2025년 4월 29일 화요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진미? 복어 알 누카즈케 이야기



세상에는 참 별난 음식들이 많죠. 삭힌 홍어부터 시작해서 취두부, 수르스트뢰밍까지. 하지만 '위험성'까지 따지자면 오늘 이야기할 '후구 알 누카즈케'를 따라올 음식이 있을까 싶습니다. 후구, 그러니까 복어는 아시다시피 맹독을 품고 있잖아요? 특히 알과 내장에는 테트로도톡신이라는 강력한 독이 들어있어서, 잘못 먹으면 정말 큰일 납니다. 복어 한 마리의 알에 든 독으로 성인 30명을 죽일 수 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일본 이시카와현에는 이 복어 알을 소금과 쌀겨(누카)에 절여서 독을 빼고 먹는 향토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후구 알 누카즈케(河豚の卵巣の糠漬け)' 또는 '후구노코 누카즈케(ふぐの子糠漬け)'라고 불리는 물건이죠. 아니, 어떻게 그 맹독 덩어리를 먹을 생각을 했을까요? 정말이지 일본인들의 음식에 대한 집념은 때로는 경이롭고 때로는 무섭기까지 합니다.


이 기묘한 음식이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암살 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측하기도 해요. 독살을 위해 소금이나 쌀겨에 절여 보관했던 복어 알을 암살 대상이 먹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서 '어라? 이거 먹을 수 있네?' 하고 발견했다는 거죠. 물론 암살 실패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은 역사 기록에 잘 남지 않으니 진위는 알 수 없지만, 꽤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또 다른 설은 혹독한 기근 때문에 먹을 것이 없어 절박한 심정으로 시도해 본 결과라는 겁니다. 굶주림 앞에서는 독이 든 음식이라도 어떻게든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보려는 시도가 있었을 수 있다는 거죠. 실제로 에도 시대 가가번(현재의 이시카와현)에서는 복어, 정어리, 청어 등을 쌀겨나 술지게미에 절여 비상식량이나 겨울철 단백질원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과정에서 우연히 복어 알의 독을 제거하는 방법을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기타마에부네(北前船)라는 배에 실려 있던 누카즈케 복어가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먹어보니 의외로 맛있어서 퍼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마치 우스터 소스가 배에서 숙성되다 우연히 발견된 것처럼요. 청주 역시 처음에는 실수로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으니, 음식의 역사에는 이런 우연한 발견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3년의 기다림, 독을 감칠맛으로 바꾸는 마법

그렇다면 이 위험천만한 복어 알은 도대체 어떻게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변모하는 걸까요? 그 과정은 정말이지 시간과 정성의 연속입니다.


먼저, 5~6월경 일본 근해에서 잡힌 고마후구(참복과)의 알을 꺼내 소금에 절입니다. 이때 사용하는 소금의 양이 무려 30%에 달한다고 해요. 이렇게 고농도의 소금에 1년에서 1년 반 정도 절이면 삼투압 작용으로 알 속의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단단해지고, 독소의 양도 약 5분의 1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소금 절임이 끝나면 알을 물로 씻어 표면의 소금기를 제거한 뒤, 본격적으로 쌀겨에 절이는 '누카즈케' 단계에 들어갑니다. 커다란 통에 쌀겨, 누룩, 고춧가루 등과 함께 알을 넣고, 이와시(정어리)로 만든 어장인 '이시루(いしる)'를 부어가며 공기가 통하지 않게 돌로 눌러 놓습니다. 이 상태로 또다시 반년에서 1년, 길게는 2년까지 숙성시킵니다. 두 번의 사계절을 거치는 동안 쌀겨 속 미생물의 작용으로 남은 독소가 거의 사라지고, 독특한 감칠맛이 생겨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독소량은 처음의 3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진다고 하네요.


하지만 놀랍게도, 이 해독 과정의 정확한 과학적 원리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쌀겨 속 특정 효소나 미생물이 독을 분해할 것이라는 설이 유력했지만, 누카즈케에서 발견된 200종 이상의 박테리아를 조사한 결과 테트로도톡신 분해 능력을 가진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금 절임 과정에서의 염석 효과로 수분과 함께 독소가 빠져나간다는 설명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시카와현에서는 이 전통적인 제조법을 아주 엄격하게 고수하고 있습니다. 제조 과정이나 재료를 함부로 바꿀 수 없는 것이죠. 현재 후구 알 누카즈케 제조를 허가받은 곳은 이시카와현 내에서도 단 21곳(개인 15, 사업자 6)뿐이며, 그중 대부분이 하쿠산시 미카와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누카즈케는 출하 전에 반드시 이시카와현 예방의학협회에서 독성 검사를 받습니다. 쥐를 이용한 실험(마우스 유닛 테스트)을 통해 1g당 독소 함량이 기준치(10 마우스 유닛) 이하임이 확인되어야만 비로소 '검사 완료(検査済之証)' 스티커가 붙어 시중에 나올 수 있습니다. 2005년에는 무면허 업자가 만든, 숙성 기간이 짧았던 누카즈케를 먹고 식중독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던 만큼, 이 안전 절차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게 총 3년 가까운 시간을 거쳐 완성된 후구 알 누카즈케는 겉보기에는 된장과 비슷한 색을 띠고, 크기나 모양은 명란젓이나 카라스미(숭어 알 절임)와 비슷합니다. 쌀겨를 가볍게 털어내고 얇게 썰어 그대로 먹거나, 살짝 구워서 먹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꽤 짜지만,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알의 식감과 함께 발효 음식 특유의 깊고 진한 감칠맛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치즈 같은 농후함이 있다는 평도 있고요. 짠맛을 중화하기 위해 레몬즙이나 식초를 뿌리거나 무즙을 곁들이기도 하고, 따뜻한 밥이나 오차즈케, 파스타 등에 활용하기도 합니다.


위험과 매력이 공존하는 맛

사실 복어 독인 테트로도톡신 자체가 감칠맛 성분 중 하나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독을 완전히 제거하면 오히려 맛이 밋밋해질 수 있다는 딜레마가 있죠. 완벽하게 독이 제거되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아무리 엄격한 검사를 거친다고 해도 100% 안전하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고요.


하지만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후구 알 누카즈케는 이시카와현의 귀중한 식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2022년에는 문화청의 '100년 푸드'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환상의 진미'로 불리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죠. 어쩌면 이 후구 알 누카즈케의 해독 원리를 완전히 밝혀내는 날이 온다면, 아직 존재하지 않는 복어 독 해독제 개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단순히 별난 음식을 넘어, 과학적인 탐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결국 후구 알 누카즈케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미지의 맛을 탐구했던 선조들의 집념과 지혜, 그리고 아직 풀리지 않은 자연의 신비가 담긴 복합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혹시 이시카와현에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 특별한 진미에 한번 도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물론, 반드시 정식으로 허가받고 검사를 통과한 제품인지 확인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 후구 알 누카즈케는 맹독성 복어 알을 3년 이상 소금과 쌀겨에 절여 독을 제거한 일본 이시카와현의 향토 음식입니다.
  • 정확한 해독 원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통적인 제조법과 엄격한 독성 검사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 탄생 배경에는 암살 시도, 기근, 우연한 발견 등 다양한 가설이 존재하며, 일본인의 음식에 대한 집념을 보여줍니다.
  • 짠맛이 강하지만 독특한 감칠맛과 식감을 가지고 있으며, 밥반찬, 술안주, 오차즈케, 파스타 등 다양하게 활용됩니다.
  • 위험성과 희소성 때문에 '환상의 진미'로 불리며, 이시카와현의 중요한 식문화 자원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